공지사항


독립운동가 박영관선생


애국지사 박영관

독립운동사

 

 

 

선생의 자()는 영관(永寬) ()는 송와(松窩)이며 본은 밀양(密陽)으로 전북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 284번지에서 박경삼과 설명일의 셋째 아들로 서기 189977() 출생하셨다.

 

선생의 나이 3살 때 어머니를 여의셨으며, 16세에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나셨다. 선생은 남다른 효행과 총명함, 강인한 체력과 인내력을 지닌 장부로 성장하여 정의와 의협심이 남다른 분이셨다.

 

선생은 청년 시절 일제 헌병통치를 바라보면서 한국인에 대한 극악무도한 핍박과 온갖 수탈을 견딜 수 없어, 이 한 몸 바쳐 반드시 국권을 회복해야겠다는 강한 다짐을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이, 드디어 1919년 전북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 선생의 자택에서 중앙에서 온 예수 선교사 타마자의 제자 송흥진과 그의 제자 송주일씨와 밀회하고, 지역유지 김영환씨로 부터 자료를 받아 만세운동을 준비한다.

 

고장만세운동 전개

장성별기열사와 함께 만세운동 전개

군자금 모집 상해 임시정부로 75천원 송부

군자금 보충을 위한 지폐 위조하다 목포형무소 복역

대한독립단 통의부 가담 전북폭팔탄 사건 복역

출옥 후 별기열사와 함께 세금불납운동 전개

선생의 충절과 효행이 호남삼강록에 기록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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